본문 바로가기
시와 시평

겨울의중턱에서면 - 규민

by 별인천강 2024. 12. 23.
반응형

겨울의 중턱에 서면,

삶은 흰눈처럼 쌓였다 녹아내리기를 반복한다.

이룬 것들이 무거워도

빈손으로 남은 바람의 차가움이 깊다.

이순(耳順)의 나이에,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회한과 성취,

희미한 경계 위에 서 있는 내 그림자.

잃어버린 시간의 조각들이

어깨를 툭툭 두드린다.

"왜 달리지 않았는가?"

"왜 멈추지 않았는가?"

허무는 흰 겨울 해처럼,

있으나 없는 듯 비추고 사라진다.

그러나 그 따뜻함 한 줄기 속에

내가 살아왔음을 느낀다.

바람이 지나간다.

허무와 함께 나의 길도 지나간다.

이 또한, 사람의 겨울이다.              

 

 

 

 

[시평]

이 시는 겨울이라는 계절적 배경을 통해 인생의 중후반을 성찰하는 시적인 여정을 그려냅니다. "겨울의 중턱"에 서면, 인생이 마치 흰눈처럼 쌓였다 녹아내리기를 반복한다고 표현하면서, 삶의 덧없음과 무상함을 드러냅니다. 이는 인생의 여러 단계를 지나온 후, 되돌아보는 순간의 깊은 고독과 사유를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1. 겨울과 인생의 상징적 연결

겨울은 자연에서의 종결과 쇠퇴를 상징하는 계절입니다. 차가운 바람과 눈은 인간의 삶에서 마주하는 고독과 상실감을 은유적으로 나타냅니다. "삶은 흰눈처럼 쌓였다 녹아내리기를 반복한다"는 구절은, 우리가 이루어낸 것들이 결국 다시 사라지거나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는 인간 존재의 유한성과 불확실성을 드러내며, 시간이 지나면서 쌓인 경험들이 결국은 무로 돌아가는 모습을 그립니다. "빈손으로 남은 바람의 차가움"은 이러한 회한의 감정을 더욱 강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차가운 바람 속에서 따뜻함을 느낀다는 마지막 구절은, 인생의 고난 속에서도 살아왔음을 증명하는 작은 희망을 보여줍니다.

2. 이순(耳順)의 나이, 회한과 성취

시에서 등장하는 "이순(耳順)"은 공자의 가르침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60세를 의미하며, 이 나이는 인생의 많은 경험을 통해 내면의 평화를 이루고, 외부의 소리에 흔들리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순의 나이에 이르러, 시인은 삶의 뒤를 돌아보며 회한과 성취가 뒤엉킨 경계를 바라봅니다. "회한과 성취, 희미한 경계 위에 서 있는 내 그림자"라는 구절은, 인생에서 무엇을 놓쳤고, 무엇을 얻었는지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나타냅니다. 이 감정은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고독한 성찰이기도 합니다.

3. 시간의 조각들, 잃어버린 기회에 대한 질문

"잃어버린 시간의 조각들이 어깨를 툭툭 두드린다"는 표현은, 지나간 시간을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아쉬움을 묘사합니다. 이 시에서 중요한 점은 "왜 달리지 않았는가?"와 "왜 멈추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이는 과거에 했던 선택들을 되돌아보며, 더 나은 길을 선택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후회의 감정을 드러냅니다. 이 질문은 누구나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느끼는 깊은 내적 갈등을 반영합니다. 달리지 않았던 순간, 멈추지 않았던 순간이 모두 인생의 결정적 순간들임을 이해하며, 그로 인한 허무와 회한이 마음을 무겁게 짓누릅니다.

4. 허무와 그 속에 숨어 있는 삶의 의미

시인은 "허무는 흰 겨울 해처럼, 있으나 없는 듯 비추고 사라진다"라고 표현하면서, 허무와 공허감이 삶에 미치는 영향을 묘사합니다. 겨울 해는 짧고 약하지만, 그 속에서도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시인은 허무한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왔음을 느낄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이는 고독과 상실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끊임없는 의지를 반영한 것입니다. 시인의 내면은, 바람과 함께 지나가고 있지만, 그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을 찾고자 합니다.

5. “이 또한, 사람의 겨울이다”

시의 마지막 구절인 "이 또한, 사람의 겨울이다"는 인생에서 마주하는 고난과 끝없는 사유의 시간을 겨울에 비유한 결론적 문장입니다. 겨울은 자연의 모든 것이 정지한 듯 보이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내면의 생명력과 희망이 숨쉬고 있음을 시인은 암시합니다. "사람의 겨울"은 단순히 나이 들고 쇠퇴하는 시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인생이 한 번은 거쳐야 할 내면의 고독과 깊은 성찰의 시간을 나타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는 그 속에서 삶의 온기를 찾고, 결국 그 안에서 살아왔음을 깨닫는 과정을 표현합니다.

6. 결론

이 시는 인생의 후반기에서 느끼는 회한, 성취, 허무를 겨울이라는 자연의 상징을 통해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되돌아보며,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려는 노력을 그린 시입니다. "이 또한, 사람의 겨울이다"라는 구절은 인생의 모든 시간이 의미 있음을, 비록 그 시간이 고통스럽고 쓸쓸할지라도 결국에는 살아왔음을 깨닫는 순간을 상징합니다. 이 시는 나이 듦에 따른 내면의 성찰을 보여주며, 인간 존재의 깊이를 탐구하는 철학적이고 시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반응형

'시와 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은 이별이 되기 전 - 규민  (0) 2024.12.23
어둠 속에서 피어난 빛 - 규민  (0) 2024.12.23
인성의 길 - 규민  (0) 2024.12.23
'내 여자'를 바라보며 - 규민  (0) 2024.12.23
겨울의 바람 - 규민  (0) 2024.12.23